나는 안 괜찮지만 괜찮아요...


1. 아내와 나눈 대화 – 나는 정말 괜찮지 않다.
오늘 아내와 식사를 하면서 나눈 대화의 내용은 마음 한 켠을 틀어막고 있던 둑 하나를 무너뜨렸다. 아내는 최근 6주간 ‘내면 아이 치유 소그룹’에 참여하고 있었고, 그 시간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나누곤 했다. 아내가 깨달은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미연합감리교회(영어 회중)에서 목회를 하다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나는 정말 괜찮지 않다. 한국 목회의 사정은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훨씬 빡빡한 상황이었고 다시 한국 교회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워낙 급하게 돌아와서 일단 먹고 사는 일부터 해결을 했어야 했고 지금 목회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다. 그 덕분에 간신히 입에 풀칠은 하고 살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삶은 희망이 없어 보였다. 늘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계속해서 쫓기고 몰리는 상황은 나의 사고와 에너지 수준을 계속해서 끌어내렸고 밑바닥이 어딘지 모를 만큼 계속 내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정말 괜찮지 않다.
괜찮지 않은 나에게 아내가 얻은 성찰과 깨달음은 위로였다. 아내와의 나눔의 시간은 언제나 서로에 대한 감사함과 어떤 성찰과 깨달음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이번에는 내 안에서 무언인가가 건드려져 눈물샘이 자극된 것이다. 
나는 울먹이며 아내에게 “나는 지난 3년, 어쩌면 가장 행복하고 잘나갔던 미국에서의 유학생활과 목회생활을 지워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2. 가장 행복했던 시간 동시에 지워 버리고 싶은 시간 – 나는 정말 억울하다.
미국에서 3년의 시간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행복하게 할 수 있었고, 행복한 공부는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미연합감리교회에서 목회하는 것으로 방향이 틀어졌는데, 이 과정 역시 너무나 자연스럽게 잘 풀어졌다. 주위 목회자들도 이렇게 쉽게 풀리는 케이스가 없었다고 한다. 현지 교회에서 목회 역시 잘 풀렸다. 언어의 장벽도 있었지만, 내가 하는 설교 때문에 교회에 안 나오던 분들도 나오고 심지어 근처 교회 교인들도 내 설교를 듣고 싶어서 예배를 두 번 드릴 정도였다. 몇 번의 장례식 집례는 지역사회에서 아시아인 한 사람이 아닌 Pastor Kim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래, 열심히 했고, 열심히 한 만큼 인정도 받았고, 행복하게 예배하고, 말씀 전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지냈다. 
그런데 나는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그 교회의 몇몇은 내가 그 교회를 떠나게 된 원인을 그 교회에서 오랫동안 주인 노릇하던 부부 때문이라 여길 것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 부부는 내가 직접 경험한 가장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을 뒤에 조종하고 거짓말을 퍼트리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뭐든지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다들 살아가면서 그런 사람들 경험하지 않는가? 교인들뿐만 아니라 내가 경험한 목회자들도 그러했고, 또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내가 그렇게 보일 것이다. 그래서 교인들 때문에 떠난 것은 아니다.
내가 교회를 떠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나를 포함한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것이 그 당시에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고, 지금 일 년이 지난 이 시간, 지금의 삶이 아무리 불만족스럽고 힘들어도,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려도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최선의 선택을 한 나의 삶은 정말 괜찮지 않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이미 이룬 동료 목사들을 보면 축하하기 보다는 시기심부터 올라온다. 내 최선의 선택에 의심을 한다. 아내와 아들의 희생을 다소 감수하더라도 내가 원하던 것들 – 좋은 목회자, 성공한 목회자, 혹은 학자의 꿈을 이루었어야 했는가? 이미 알게 모르게 아내와 아들을 희생시킨 것만으로 마음이 괴롭고 힘든데, 그것을 또 요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도 정말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런데 왜 억울한 마음이 들까?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봐도, 최선의 선택이 맞는데, 억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3. 갑작스럽게 떠오른 사라져간 생명들 (욥의 희생된 가족, 종, 가축) – 의로움을 증명하기 위한 희생
하던 짓이 목사질이라, 욥기서가 떠올랐다. (내가 욥과 비슷한 처지라는 개소리를 하기 위해 떠올린 것이 아니다!)
욥기서는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책인데 그 배경부터가 맘에 든다. 이스라엘 땅이 아닌, 이방인의 땅, 우스 땅,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의 율법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거기에 욥이라는 사람이 있고 의롭다 라는 소리를 듣는다. 율법이 통하지 않고 율법을 알리 만무한 이가 의롭다? 시작부터 흥미롭다.
하나님은 인간처럼 욥에 대해서 다른 신적(하나님의 아들들) 존재들 앞에서 자랑하고, 사탄도 그 자리에 있다. 사탄(고발자)은 욥의 의로움을 시험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점점 흥미롭다. 
게다가 하나님은 사탄의 제안에 따라 욥의 의로움을 시험하게 허락한다. 의로움을 증명하기 위해 욥이 시험을 당하는 것을 허락, 욥을 의롭다고 보는 하나님의 안목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사탄 주관의 시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랑하고, 사탄은 증명하라고 하고, 하나님은 사탄의 제안대로 하고… 전형적인 하나님, 사탄, 의로운 인간의 모습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신개념의 드라마이다. 정말 미치도록 재미있다. 거의 막장 드라마 급이다.     
하나님은 욥이 의롭다는 것을 증명했는가? 못했다. 욥은 자신이 고통받는 이유에 대해서 답을 얻었는가? 못 얻었다.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고 아무 원하는 답도 얻지 못한 채, 욥기는 ‘하나님은 혼란마저 다스리신다’라는 알쏭달쏭한 답을 남기고, 그 모호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답 앞에서 욥이 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서둘러 마무리 짓는다. 욥이 고난을 받은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마치 블랙 코미디 같다. 
이 블랙 코미디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드러낸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누군가의 생명을 희생할 것을 요구하는 현실이다. 욥기 초반부에 사탄이 제안한 욥의 의로움을 증명하기 위한 시험, 생명을 해하고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는 압제의 현실이다. 이 현실은 의롭다던 욥이 자기의 탄생을 저주까지 하게 한다. 
이 욥기가 드러내는 부조리는 오늘날 내가 처한 세상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인간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그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다. 그런데 한 인간의 삶이란 다른 여러 사람들의 삶과 엮여 있기 때문에, 아무리 주위의 사람을 배려한다고 해도 가장 가까운 가족들은 불가피한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삶이 당연한 삶이라 여긴다. 나의 어린 시절, 청소년기, 청년기때 이런 삶 – 사탄이 제안한 무엇인가 증명하기 위해 자신과 다른 생명을 희생하는 삶 - 이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였다. 
어쩌면 나의 사라지지 않는 억울한 마음은 여기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나는 나를 좋은 목회자로, 성공적인 목회자로 증명하기 위해 내 자신의 삶을 깎아냈다. 내 삶을 깎아내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풀리지 않는 육체의 피로와 스트레스로 나타났고 나 때문에 이미 큰 희생을 감내하고 있는 아내와 아들에게 악영향을 미쳤다. 나는 그런 삶이 더 의미 있는 삶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그 불가피한 선택, 내 자신을 증명하고자 한 선택은 아내와 아들을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갉아먹었다. 
나의 억울한 마음의 이유가 더 분명해진다. 처음에는 나의 억울함 마음이 무엇인가 좋은 선물을 받았다가 갑작스럽게 빼앗긴 아이와 같은 억울함이라 생각했다. 실상은 내가 당연하게 생각한 삶의 방식, 사탄이 제안한 무엇인가 증명하기 위해 자신과 다른 생명을 희생하는 삶에서 재미를 못 봤기 때문이다. 
욥의 의로움을 증명하기 위해 희생당한 생명들, 욥의 자녀들과 내 아내와 아들이 겹쳐 보인다. 나의 선택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내 아내와 아들을 희생하지 않기 위한 선택 - 사탄이 제안한 방식을 거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래 정말 최선의 선택이다. 



4. 안 괜찮지만 괜찮다.
내가 최선의 선택을 했지만, 나의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내일 또 출근을 준비하고 하루의 일을 감당하고 모자라는 월급을 채우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나의 삶은 안 괜찮다. 그런데 또 괜찮다. 아내는 오늘이 행복하다고 말하고 도준이는 나만 보면 분위기가 밝아진다. 나 역시 미국에서 삶 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조금 덜 피곤하다. 여전히 40년간 프로그래밍 된 삶의 방식과 새롭게 시작되는 삶의 방식이 내면에서 충돌하고 있어서 힘들지만… 그래서 안 괜찮지만… 뭐 괜찮다. 더 좋아질 것이다. 



5. 다시 기회가 돌아온다면… 
나에게는 아직 목회에 대한 미련이 있다. 성경을 연구하고 말씀을 나누는 일이 행복했다. 오고 가는 길에 교인 집에 잠깐 들려 농담 따먹기도 하고 함께 기도하던 때가 즐거웠다. 다시 목회할 기회가 생길지는 모르겠다. 미국에 가기 전에도 한국교회의 목회 방식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지금은 더 적응하기 힘들 것이다. 교단 혹은 교회의 제도적 아젠다를 위한 목회는 예전보다 지금이 더 싫다. 
그래도 만에 하나 내게 다시 기회가 돌아온다면 나를 증명하기 위한 목회가 아니라 온전히 여러가지 이유로 희생당하는 생명들의 편에 설 것이다. 이 글을 쓰고 나니 마음이 정말 후련하다.

'다시 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며칠째 꿈자리가 사나웠다.  (0) 2023.07.05
나는 안 괜찮지만 괜찮아요 (2)  (0) 2023.07.03
양가감정  (0) 2018.03.02
Posted by seonhwe
:

양가감정

다시 시작... 2018. 3. 2. 01:48 |




결혼 10년 차에 얻은 아들...

모처럼 휴일...

키즈 카페에서 세 시간 끌려다니면

이넘이 언제나 커서 내 시간 자유롭게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마음

막상 찍어 놓은 사진 열어놓고 아들 사진 또 보면

이넘이 커서 자기 갈 길로 가게 될 때가 벌써 부터 아쉬운 마음

....... 양가감정


'다시 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며칠째 꿈자리가 사나웠다.  (0) 2023.07.05
나는 안 괜찮지만 괜찮아요 (2)  (0) 2023.07.03
나는 안 괜찮지만 괜찮아요...  (1) 2023.07.01
Posted by seonhw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