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선휘입니다.
이 사진에 얽힌 사연하나 말씀 드리지요...
전 결혼식을 미국에서 했습니다.
인생의 25년간을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불가피하게(경제적인 이유로)
현지에서 비자를 바꾸게 되었죠
그렇게 되면 한국이나 기타 다른 나라를 자유롭게 다니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제하던 아내와 한국에서 결혼을 하지 못하고 아내가 미국으로 건너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한국에 있는 제 친구들, 그리고 아내 친구들 어느 하나도 결혼식 때문에 미국을 건너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사실이 아내한테 정말 미안했고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이 이야기는 언제 또 하게 되겠지요...
오늘은 이 사진에 찍힌 다른 한 남자이야기 입니다.
같은 교회 고등부, 같은 대학교를 다니면서 만난 친구인데 도대체
이 녀석하고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저도 불가사이입니다.
뭐 살다가 아웅다웅하면서 정이 드는 타입이었나 봅니다.
아무생각 없이 '나 결혼한다. 와서 결혼사진 좀 찍어다오.'라는 말이 화근이 되어
친구 결혼식 때문에 수천불 비행기값 날려가면서 온 친구입니다.
그 당시 제가 쓰던 D100과 S1pro를 양쪽에 끼고 열심히 제 결혼 사진을 찍어줬습니다.
사실 미국에서는 결혼사진을 사진가한테 부탁을 하면
제가 살던 지역 같은 데서는 최소한 2500불이상은 줘야 한다고 합니다.
대부분 미국 사진사고 말도 안통하고 여러가지로 부르기에도 제 상황이 좋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와서 사진을 찍어주는 덕분에 오늘의 제 결혼사진이 남게 되었습니다.
평생에 한 번 있을 결혼,
그리고 그 결혼을 기록할 수 있게 해준
참 고마운 친구죠... 제가 인복이 있나봅니다.
결혼하면서 제가 그 친구한테 '네 결혼식 스냅은 내가 책임진다.'라고 했는데
제 환경이 그리고 이 친구가 예상외로 빨리 결혼을 하는지라...
그 약속을 못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 풍습의 유래는 유럽에서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로자린드 부인은 남편이 십자군 전쟁에 나간 뒤 나쁜 사람들에게 집을 빼앗겨 먼 산골 마을에 가서 피해 살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딱한 로자린드 부인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부인은 그 친절에 보답하는 뜻으로 부활절에 마을 아이들을 모아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상징으로 예쁘게 색칠한 달걀을 하나씩 나눠주었습니다.
그 달걀에는 부인이 직접 쓴 '하나님의 사랑을 믿자'라는 말이 적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로자린드 집안의 가훈이였습니다.
어느 해 부활절 날, 부인은 길에서 병든 어머니를 찾아간다는 어린 소년을 만났습니다. 부인은 그 소년을 위로하고 가지고 있던 색 달걀 하나를 주었습니다.
부인과 헤어진 그 소년은 어머니를 찾아가는 중에 한 산골에서 병든 군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군인을 보살펴주고 로자린드 부인에게 받았던 달걀을 주었습니다. 그것을 받아 든 군인은 그 달걀에 적힌 글을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바로 자기 집안의 가훈이었으니까요.
군인은 그 소년에게 물어서 결국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인은 그 후에도 해마다 부활절이면 자신의 남편을 찾아준 색 달걀을 이웃들에게 나눠주었고 이것이 유래가 되어 오늘 날에도 부활절이면 부활의 메시지가 담김 색 달걀을 나누며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친구가 갑자기 사진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다. 아주 오래전에 찍은 사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도저히 찾을 수 가 없었다. 그 사진은 3년전 쯤에 찍은 위의 사진인데, 어떤 포스터를 만들 때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이 사진을 찍을 때는, 사진을 찍은지 얼마되지 않았던 때라 사진관리에 대해서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때다 그래서 파일이 여기 저기에 널려 있고 어느 컴퓨터에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암튼 1시간 동안 이리저리 간신히 찾아서 보내주게 되었다. 사실 이 사진 찍고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던 사진이다. 지금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사진인데, 나름대로 사막삘이 나기도 하고 해서 보관해 놨던 것이다.
사실 사진 자체는 별 의미가 없더라도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못 찍은 사진이라도 그 사람에 있어서는 '역사'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맨날 Great shot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지금의 내가 있기 위해 수없이 날렸던 컷들... 아마 자신을 돌아보는 데 참 좋은 것이라 생각된다.
"취미가 뭐에요?" 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난 쑥스럽게 "그냥 사진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라고 한다.
사진을 알고 사진을 시작하게 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다. 친한 대학 동기 하나가 학교에 DSLR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때가 아마 나 제대하고니까 2003년쯤 된거 같다. 암튼 그 친구는 S1pro를 거금을 주고 중고로 구입한 후 항상 들고 다녔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친구와 어디 앉아서 놀고 있으면... 내가 그 친구 카메라를 뺏어들고 놀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관심이 가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하진 않았다.
그러나 미국에 온 뒤로 상황이 달라졌는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약간의 돈을 벌게 되어 동생과 돈을 보태서 D100을 사게 되었다. 하지만, 사진에 정신을 팔려 제 할일을 제대로 못하는 나를 안쓰럽게 여긴 와이프는 카메라와 렌즈와 삼각대 등등을 동생에게 줘버리라고 했고... 난 정말 쓴물을 삼키며 1000불이 넘는 장비를 줘버렸다.
가끔 사진이라도 찍고 싶으면 동생한테 가져간다고 이야기를 해야 했고... 난 사진도 찍지도 않는 동생이 자기 장비만 지킬려고 하는 것을 보면 분통이 터졌다. 그렇게 속앓이를 하다가...
대학원 입학이 결정되고 학교에서 장학금이 결정되고 난 후... 그게 고마워서인지 아버지께서 크게 한 방 쏴주셨다.
그래서...
S5pro를 사게 되었다. 물론 50.4렌즈 하나 밖에 없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은가?